나는 최근까지도 내 불행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이혼하신 것도, 부모님이 바빠서 나와 보낼 시간이 없었던 것도, 흔히 말하는 금수저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면서 나와 다른 생활수준을 가진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느낀 것도 모두 돈 때문에 시작된 불행이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이런 불행은 겪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제주도에 계신 조부모님의 손에 맡겨졌다. 3살 때부터는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과 함께 살며 방학 때만 조부모님을 뵈러 제주도로 내려가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내려가지 않았고 할머니는 머지 않아 서울로 올라와 우리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어렸었던 나는, 할머니가 왜 서울로 올라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할머니의 서울 살이가 할아버지와의 이혼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혼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할아버지가 돈을 많이 쓰는 할머니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랬다. 나는 할머니 집에 있을 때면 할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뒤돌아 누운 채 괴로움에 눈물을 훔치는 걸 목격하곤 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음에도 내가 3살 때부터 서울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날 돌봐주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아기일 때는 큰 고모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고용된 아주머니가 날 돌봐주었다. 부모님은 밤에만 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는 점점 좋아졌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날 몇 개월간 돌봐주던 할머니가 내 양말을 신겨주며 읊조리던 말이 크면서 쌍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오셔서 급식을 나눠주는 친구의 부모님을 보며 부러워하고, 항상 옆에 있어주며 딸의 시시콜콜한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대답하는 나를 돌봐주시던 친구 어머니를 보며 우리 부모님을 생각했다. 나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일밖에 모르는, 나의 성장을 지켜봐 주지 않는 부모님이 너무 미웠다. 어렸을 때 나는 외롭고 결핍이 심한 아이였다.
고등학교는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으로 다녔다. 공부에 욕심 있는 친구들이 정말 많은 학교였으며 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였다. 매일같이 백화점에서 산 디저트를 가져오는 친구부터,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친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해외에서 비싼 옷을 사는데 돈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친구, 돈을 펑펑 써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그 때 느끼던 감정이 부러움과 질투심, 열등감이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감정들을 꾸역꾸역 감당했다.
몇 년 전 이유 없이 내 머리 속의 퓨즈가 탁 나갔던 순간이 있었다. 예고도 없이 생각나서 계속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과 감정들의 폭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운지 알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너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 같은 이 기억들과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괴로워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내 과거의 기억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웠지만 곧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돈이 없는 것이 내 고통스러운 기억의 원인이었다. 만약 할아버지가 돈이 아주 많아서 돈 쓰는 것이 할아버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면? 돈이 아주 많아서 부모님이 일할 필요가 없었다면? 돈이 넘쳐나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경제적 환경이 비슷했다면? 몇 번이고 변하지 않을 내 과거를 새롭게 시뮬레이션했다.
20대 중반쯤에 부모님의 성실한 노동으로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우리 집은 나를 유학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몇 년의 유학생활 내내 비싼 유학비와 생활비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우리 집의 경제적 여유의 우쭐댔다. 겨우 유학한다는 사실 하나로 돈 위에 내가 있는 것 같았고 내게 불행을 가져다주던 돈 자체를 정복한 것 같았다. 돈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내가 비로소 내가 부러워하던 그 사람이 되었고 심지어는 내가 겪은 과거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고도 느꼈다. 내가 벌지 않은 부모님의 돈으로 우쭐대며, 겨우 외국 유학을 갔다는 사실만으로 자만하다니 스스로가 정말 한심하고 우스웠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만드는 좋은 환경을 갖는다는 것이 돈으로 가능한 일이구나 느끼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2020 초, 참 이상했다. 넉넉한 지원 안에서 원하는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이 텅 빈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날 ‘금수저’라고 취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기는 커녕 마음 속이 공허하고 허무했다. 날 괴롭혔던 모든 기억의 원인은 돈이었고 그 기억을 잊을 만큼 충분히 돈으로 보상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마음이 괴로운 것 자체가 괴로웠다.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아 혼란스럽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아무 생각 없이 넘기던 소셜미디어 피드에서 글귀를 하나 보았다. “돈은 어느 정도의 행복을 줄 수는 있지만 돈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진부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말을 본 순간 꽤나 당황스러웠다. 언제나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고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에게 당당히 얘기하던 나를 저격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불행한 이유가 돈 때문만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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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때, 열심히 노력하여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무언가에 깊이 집중할 때 즐거웠다. 또, 좋은 글귀를 보고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이 웃는 것을 볼 때 오히려 행복해했다. 내가 느꼈던 행복은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내가 내 자신을 위해 나를 포함한 사람들과 인생을 사랑할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불행의 원인은 좇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그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똑똑히 인지하고 내 과거로서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나는 불행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자기 연민을 갖기보다는 초월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 불행을 잊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돈이 만들어낸 고통은 돈으로 잊을 순 없었다. 누가, 무엇이 그 고통을 만들어 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웃음을 주는 순간을 찾아다니고, 좋은 사람들과 둘러싸여 있을 때 불행을 잊을 수 있는 것. 생산적인 일을 하고 윤택한 대화를 함으로써 성장하는 시간을 갖는 것. 즉, 불행을 없애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행복을 계속 마음 속에 주입하면서 불행을 차츰 잊어가는 게 행복할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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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이제 돈이 많지만 여전히 열심히 일하시고, 우리 할머니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할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움찔하시며, 난 돈이 많이 드는 유학을 다녀왔어도 가끔 고등학생 때 돈이 많던 친구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해하고, 우리 할머니는 가족이 찾아와 말동무를 할 때 환하게 웃으시며, 나는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을 모아 아주 조금씩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진다.
앞으로도 불행을 잊어갈 수 있도록 행복한 순간을 쌓아야지.
불행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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